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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이야기

지금은 사라진 태국의 6월 24일 국경일 기념 의례

작성자
이상해요
작성일
2022-07-26 14:23
조회
88487

(전편 : https://www.jbc.ne.kr/bbs/world?mod=document&pageid=1&uid=578


1932년 6월 24일, 프리디 빠놈용과 쁠랙 피분송크람 등 혁명적 지식인과 청년 장교를 중심으로 한 '시암 혁명'이 태국에서 일어났습니다. 무능한 전제군주정에 대항해 입헌민주주의 정체를 세우고 태국을 민주국가로 변혁하기 위해 엘리트 계층이 주도한 혁명이었지요


이 혁명으로 전제군주정 태국에도 민주헌법이 제정되고, 혁명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의회가 개설되는 등 나름의 성과를 맛보게 되었습니다만



(입헌 이후 태국 3대 총리를 역임한 쁠랙 피분송크람)(1938-1944, 1948-1957)


혁명 주도자였던 프리디 빠놈용의 급진적인 사회개혁안이 군부의 반발을 샀고, 그와 함께 혁명을 이끌었던 청년 장교 쁠랙 피분송크람이 빠놈용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 1938년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총리에 오른 쁠랙 피분송크람은 1938년 7월, 각료회의의 투표를 걸쳐 혁명이 일어난 6월 24일을 '태국 국경일'로 정할 것을 발표했고, 국가경축일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로 태국의 민주화(?)를 기념할 것을 각계각층에 요구했습니다


1939년 첫 국경일 기념 당시 태국의 한 신문에 보도된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각회의는올해 6월 24일 국경일과 헌법 개정 성공을 축하하는 소식을 전했다. 총리는 국경일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 부처에 명령을 내렸는데, 수행해야 할 임무에 관한 지시는 다음과 같다.
국방부

1. 오후에 사남 루앙에서 열병식을 거행한다

2. 청년 병사를 조직해 야간에 횃불 퍼레이드를 벌인다

3. 주간에 항공기를 동원해 축하의 색종이를 뿌린다. 밤에는 불꽃놀이를 전개한다

4. 정오에 육해공 포병이 축하의 예포를 쏜다


법무부
1. 모든 행정구에서 국경일의 의미를 전하는 학생회를 조직한다

2. 불교, 그리고 정부에서 공인한 여타 종교의 기념 의례를 거행한다

3. 미술단체를 조직해 야간에 기념 연극을 펼친다

4. 야간 횃불 행진 동안 청년 군인들이 부를 애국 노래 경연 대회를 개최한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노래로 국경일 밤 라디오 방송에서 송출한다

5. 국경일에 집을 장식할 국기를 제작해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한다


실내 디자인 협회
1. 각 행정구역의 장관들로 하여금 즐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명령한다

2. Ratchadamnoen Road 양쪽의 덤불을 따라 전기 장식을 설치한다. 파루스완 궁전 앞에서 사남루앙 주변까지 전구를 단다.

3. 국경일 저녁에 기념 예능 공연을 펼친다

4. 국경일 정오에 1분 동안 모든 자동차로 하여금 경적을 울리도록 한다. 단, 병원 주변이나 도로에서는 울리지 않도록 한다


경제부
다양한 종류의 국경일 경축 우표를 발행한다


1939년 6월 24일 열린 첫 국경일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축일색이었습니다. 정오가 되자 전국 각지의 불교 사원에서 종을 울리고, 차량은 경적 소리를 냈으며, 시민들은 뿔나팔을 불고 군인들은 예포를 쏘았습니다. 거리는 태국 국기와 국기를 상징하는 색깔의 조명으로 화려하게 장식됐습니다.



(1) 첫 국경일을 기념하는 플로트카
(2) 국경일을 기념해 행진하는 소년소녀단의 모습

(3) 국경일 기념 열병식에서 위용을 드러내는 전차

(4) 청년 군인들의 횃불 퍼레이드


오후에는 오색조화와 각종 장식으로 다채롭게 꾸며진 플로트카가 가장행렬단과 함께 거리를 행진했고, 경찰과 육해공군, 소년단의 열병식이 성대하게 거행됐습니다


밤에는 청년 군인들이 횃불을 들고 대로에 도열했으며,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애국적인 가요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아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었습니다



1940년 6월 24일에는 시암 혁명 8주년을 기념하는 민주기념비가 수도 방콕에 건립됐고, 이후 쁠랙 피분송크람 정권 동안 태국의 대표적인 국가상징물로 되기까지 했지요



6월 24일이라는 국경일 자체가 쁠랙 피분송크람 등 혁명적 지식인과 군인이 주도가 돼 만든 명절인 만큼, 피분송크람 총리를 찬양하는 연설과 방송도 여럿 이뤄졌습니다


피분송크람 총리의 라디오 연설은 매 국경일 저녁 7시마다 이뤄졌으며, 이날의 연설은 책자로 출간되거나 담장의 선전문구로 대중에게 널리 유포됐습니다


1939년부터 1942년까지는 혁명 이래 태국의 발전과 피분송크람 내각의 업적을 칭송하는 여러 책자가 간행돼 필독도서로 선정되기도 했지요


다만 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6월 24일의 기념이 1939년의 기념과 같이 성대하게 열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957년, 쿠데타로 피분송크람 정권을 무너뜨린 사릿 타나랏은


"6월 24일은 소수 혁명파에 의해 지정된 기념일이기에 온 국민의 축일로 삼기엔 부적절하다. 다른 여러 왕국의 사례를 보건대, 이들은 국왕의 생일을 명절로 정해 국민통합을 결속하는 만큼, 그 예를 따라 라마9세 대왕의 탄신인 12월 5일을 새로운 국경일로 정한다"


라고 각료회의를 통해 밝힘으로써, 21년간의 짧은 역사를 남긴 채 6월 24일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릿 타나랏이 태국의 민주화와 민주주의 제도에 부정적이었던 탓도 있고, 또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위해 당시 젊은 국왕 라마9세의 권위를 등에 업고자 했던 탓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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