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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이야기

나치 시기 독일의 국경일 - 5월 1일 노동절

작성자
이상해요
작성일
2022-06-09 03:08
조회
93022


짤은 내용과 '아마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오늘날 5월 1일 노동절은 세계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민축제일로 지정돼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채택한 나라보다 노동절을 휴일로 정한 나라가 더 많다고 하니, 그 위상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5월 1일이 세계적인 휴일이 된 것은 그 역사가 70년 남짓 밖에 되지 않습니다. 특히 오늘날 노동권이 세계적으로 좋기로 유명한 독일에서도 1933년 이전까지는 노동절이 공휴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이마르 헌법이 제정된 8월 11일도 국가 차원의 명절이 되지 못하고 제국의회만의 행사로 그치고 말았으니, 노동절이야 말할 것도 없었겠지만요(...)


그런 노동절을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경일로 정한 것은 다름 아닌 아돌프 히틀러(...) 때였습니다.


히틀러는 1933년 집권 후 5월 1일을 '국가노동절'로 정합니다. 노동절을 국가 단위로 축하하는 명절로 승격한 것이지요. 종래 노동절은 노동조합과 좌익 단체의 기념 데모와 행진, 정치연설 등으로 상당히 '전투적'으로 치러졌는데, 히틀러는 노동절을 국가기념일로 축하하면서 "계급갈등의 상징, 끝없는 불화와 투쟁의 상징이 다시 민족적 대단결과 봉기의 표상으로 되고 있다."고 선전했습니다. 계급 갈등을 억누르고 민족 구성원 간의 총화를 추구하던 나치당의 원리를 생각해보면, 노동절을 휴일로 정한 것은 나치즘 운동에 노동자들의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서 있던 셈이지요.



히틀러 정부는 첫 국가노동절 기념식의 슬로건을 "노동을 존중하고 노동자를 존중하라"로 정하고 베를린 남부의 템펠호프 들판에서 대대적인 축하대회를 열었습니다.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 기념대회에는 주요 기업에서 파견된 노동자 대표단과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도 참석했습니다.


행사는 히틀러의 연설과 축하 공중비행, 그리고 야간 조명쇼와 불꽃놀이가 개최돼, 매머드급 축제로 펼쳐졌습니다. 당시 괴벨스 선전부장관은 이 광경을 두고 "예전에 우리는 이날에 기관총의 소리와 계급투쟁의 함성, 증오의 인터내셔널가를 들어야 했지만, 히틀러 정부의 첫 해부터 독일 국민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확고한 충성심으로 이 자리에 뭉쳤다."라고 연설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히틀러는 1933년, 노동절을 대대적인 축제로 기념하면서 국가사회주의 운동에 노동자의 지지를 끌어들이고, 경축 이벤트로서 독일 민족의 총화단결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 했지만....



그런 연출은 어디까지나 일회성 쇼에 불과했다는 게 함정입니다. 여러분 이거 Das~~~~~


행사 다음날인 1933년 5월 2일, 히틀러는 돌격대를 보내 독일의 주요 노동조합 사무실을 점거하고 나치당 산하 독일노동전선으로 모든 노동단체를 통폐합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당연히 노동조합의 재산들도 나치당에 압류되었지요(...) 당시 독일 노동조합은 단순히 직공들의 투쟁공동체를 넘어 학교, 여가시설, 공동주택, 병원 등 다양한 후생복리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을 위한 은행까지 갖고 있었다고 하니, 당시 독일에서 노조의 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노조 활동을 통해 노동운동을 전개할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생활과 교육을 향유할 수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을 나치당에 빼앗긴 겁니다.(...)


그리고 1934년, 히틀러 정부는 5월 1일을 독일 국민의 국경일로 변경하고 독일 민족의 최대 국경일로 만들었습니다. 원래 게르만 민족은 전통적으로 5월 1일을 '봄 축제'로 기념했고, 메이폴을 세워 그 밑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새 봄을 축하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히틀러는 고래의 민족 풍습을 끌어와서는 노동절의 원래 의미를 지우고 전통문화 속에서 살아 숨쉬는 독일 민족의 위대함을 내세웠습니다.



5월 1일 노동절은 어느새 독일 민족의 전통을 축하하는 국경일로 바뀌었습니다. 메이폴을 세우고, 그 밑에서 민속음악을 연주하고 그 반주에 맞춰 민속춤을 추는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열렸습니다. 모닥불을 피우고 횃불을 밝히는 게르만족 풍습을 따라서 밤에는 봉화를 올리고 폭죽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순수하게 민속축제의 날로 된 건 아니고(...) 베를린에서 열리는 히틀러의 연설을 라디오 중계로 의무적으로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히틀러 유겐트나 돌격대 퍼레이드, 노동자 행진, 대규모 집회도 열렸다고 합니다.


이때 독일 지역신문이 5월 1일 기념에 대해서 묘사한 기사를 보면 내용이 참 가관입니다(...)
예를 들면...


"이 공휴일은 만장일치로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
"참으로 기쁨과 공동체의 날"(...)

"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티롤(오스트리아 지역 이름) 민속의 근원에서 그토록 아름답고 다채롭게 발전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민족 전통 관습에 따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독일판 땡전뉴스도 아니고 무슨



그런데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행사에 대한 국민의 호응이 크게 줄어들자 나치당은 지구당이나 기업을 시켜 노동자들에게 무료 점심이나 맥주, 또는 보너스 임금을 지급케 강요하고, 노동자들에게는 의무적으로 기념행사에 참석케 요구했습니다. 오죽 이 현상이 심했으면 나치당 지역관구에서 베를린에 올려보낸 보고서 중에는


"노동자들은 축제를 '총통과의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하는' 공동 축하 행사라기보다는 '명령에 의한' 축제로 여겼다."


"자발적으로 나타난 사람들은 주로 먹고 마시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고, 히틀러를 열광적으로 외치거나 총통의 연설을 열심히 들으려 하지 않았다."


라고 돼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냥 민속축제만 벌였으면 됐을 지도?


결국 1942년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열세에 몰리자 나치 정권은 5월 1일 휴일을 쇠는 것을 보류하기로 결정했고, 그 이후로 5월 1일은 국민의 국경일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됐다는 그런 뒷이야기(...)

전체 2

  • 2022-06-09 04:35

    총통절로 변해버렸군오 으악!

    이런 부작용을 겪어서인지
    요즘 독일의 노동절을 보면 대규모 집회, 시위가 벌어지는 해가 많네오
    경찰 인원이 어마어마하게 동원될 정도로유


    • 2022-06-09 16:01

      나치 이전 독일의 노동절 기념 문화가 원래 노조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옥외 행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요. 그걸 고려하면 오늘날 독일에서 노조집회가 노동절에 열리는 건 본래 전통을 잘 계승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히려 히틀러 시기 노동절 기념이 더 예외적인 현상이었쥬

      그래도 5월 1일 기념은 사회주의자들의 전통이라면서 9월이나 3월 언저리에 근로자의 날을 만들어둔 영미권 국가들에 비하면 양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