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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아카이브) 나치 부역 언론인에겐 '관용'이 없었다

이슈와 토론
작성자
이상해요
작성일
2022-07-24 15:50
조회
43926


http://web.archive.org/web/20170330083655/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1/005000000200103292126298.html


눈여겨 볼 것은 이렇게 단죄받은 나치부역자 가운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엄중하게 `정의의 심판'을 받은 사람들이 지식인, 특히 언론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법정은 언론인 중에서도 애초부터 `히틀러의 나팔수'를 자임했던 파시스트보다 독일의 지배가 확립되자 뒤늦게 나치 선전원으로 돌아선 `매춘 언론인'을 더 가혹하게 처벌했다.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대에 올려 가차없이 처단해야 한다”는 것이 드골이 밝힌 `최우선 가중처벌'의 이유였다.


일간 <오늘>의 정치부장 조르주 쉬아레즈는 “프랑스를 지켜주는 나라는 독일뿐”이라고 한 기사와 히틀러의 관대함을 찬양한 기사를 쓴 대가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총살형에 처해졌다. 일간 <누보 탕>의 발행인 장 뤼세르는 신문협회 회장을 지내면서 반민족 언론인들의 사상적 지도자 노릇을 했다는 혐의로 사형 및 재산몰수형을 받았다. 독일에 `간과 쓸개'를 내놓았던 <르 마탱>의 편집국장 스테판 로잔은 20년 징역형을 받았다. 그 밖에 독일방송의 선전문을 작성했던 폴 페드로네, 독일 점령 기간중 <라디오 파리> 해설가로 이름을 날린 장 헤롤드-파퀴, 36살의 작가 겸 언론인 로베르 브라지야크 등이 민족반역자로 사형대에 올랐다.


이와 함께 나치 찬양에 적극적·소극적으로 나섰던 언론사도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독일 점령 기간중 15일 이상 발행한 신문은 모두 나치에 협력한 것으로 간주해 폐간시키고 언론사 재산을 국유화했다. 그리하여 900여개의 신문·잡지 가운데 649곳이 폐간되거나 재산을 전부 혹은 일부 나라에 빼앗겼다. 일간지 가운데 처벌을 면한 것은 <르 피가로> 등 3곳뿐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나치점령기 동안 자진휴간함으로써 민족의 양심을 지킨 신문들이었다.

전체 1

  • 2022-07-24 17:05

    1940년대 초반은 워낙에 국가 차원에서 언론을 동원해 전쟁 분위기 올리는데 난리를 쳤던 때라
    르 피가로같은 곳들도 회유와 압박을 많이 받았을텐데 휴간으로 저항한게 대단하네오 ㄷ